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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2006 북한 개성공단을 가다
등록날짜 [ 2006년06월09일 00시00분 ]



-4월 19일 새벽 6시 30분경 전국에 소재한 섬유패션업계 인사들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삼성동 섬유센터 앞에 집결했다. 지방에서 전날 밤 서울로 올라와 하루 밤을 묵은 인사들도 있었고 새벽 1시경에 일어나 상경한 관계자도 있었다. 섬유패션업계가 이렇게 대규모로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지난해 신원공장 준공식이 있었지만 초청된 몇몇 인사들만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오래전에 이같은 방문 계획을 수립했지만 여러번 무산됐었다.

이번에도 북한측은 방문 하루 전날 초청장을 보냈다. 섬산련은 초청장이 오지 않아 방문 하루전날까지 방문 계획을 최종확정 짓지 못한 채 [이변이 생기면 못간다]는 단서를 달았다.

130여명에 달하는 방문단을 실은 4대의 버스가 자유로를 달려 남한의 최전선인 도라산 CIQ에 도달하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도라산 CIQ에서 수속절차를 밟고 다시 타고 온 버스에 올라 비무장 지대를 통과해 4킬로를 달려 북측CIQ에 도착했다.

문산에서 개성까지는 27.5킬로미터다. 서울과 개성은 60킬로미터다. 남북 양측 CIQ에서의 수속절차를 빼고 서울에서 정상 속도로 달려 1시간 정도면 개성공단에 갈수 있을 만큼 가깝다.

개나리가 활짝 핀 자유로는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도라산 CIQ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기 위해 수속 절차를 밟는 곳이다.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 휴전선 최전망에 우뚝 서 있다. 도라산 CIQ 바로 옆에는 도라산 역이 역시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다. 이 모두가 개성공단을 연결하기 위해 지어진 것들이다. 비무장 지대를 통과하기 위해 남쪽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트럭에 시멘트를 잔뜩 실은 차에서부터 각종 원부자재를 실은 차량들과 개성공단에 업무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차량들이 군부대의 통과 명령을 기다렸다. 차량들은 모두 번호판을 가리고 개성공단 차량 표지판과 황색깃발을 달았다. 개성공단 방문단은 남쪽의 신문과 라디오, MP3, 고성능 카메라 망원경 등은 지참할 수 없었다.

이윽고 차량들이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달렸다. 뿌옇게 운무가 깔렸지만 멀리 경의선 철도가 보였고 녹 쓴 기관차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도로를 따라 우측에 경의선 철도가 왕복 4차선으로 놓여 있었다. 경의선이 연결 된다면 신의주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관통해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지금은 개성공단만이라도 철도를 따라 물류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무장 지대는 세계에서 유일한 생태보호구역이다. 자연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곳곳에 생태이동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남측 비무장지대(남방 한계선)가 끝나면서 남쪽에서 호위해온 우리 남측 군인 차량이 뒤로 빠졌다. 곧 바로 북측 초소가 눈에 들어오면서 북측 호위 차량이 보였다.

멀리 남측의 대성동 마을이 보였고 북측의 기정동 마을도 눈에 들어 왔다. 남과 북을 상징하는 두 마을에 높이 솟은 태극기와 인공기가 빗물에 젖어 축 가라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남측 대성동 마을은 50여가구에 2백여명이 살고 있고 북측 기정동 마을 역시 최근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차량은 북방 한계선을 넘어 북측 CIQ에 도착했다. 북측 CIQ 역시 최근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지만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북측의 재래식 CIQ에서 수속 절차를 마쳤다.

북한 군인이 차에 올라와 이름을 호명하면 우리 측 방문단이 차에서 내려 북측 CIQ에서 수속을 밟는 순서로 진행됐다. 수속 과정은 방문증과 가방 검사가 전부였다. 금지물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였다. 디지털카메라는 허용됐다. 단 나올 때 반드시 촬영한 이미지를 검사 받아야 했다. 북측 CIQ 군인들은 대부분 순박한 우리나라 농촌의 중년 아저씨를 연상시켰다. 이들 가운데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풍기는 인상은 생각 보다 부드러웠다.

"남쪽에서 투자하러 오는 겁메까?"

북측 군인이 이렇게 물었다. 수속 절차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북측 CIQ에서 수속을 마치고 버스로 잠깐 달리니 판문역이 나왔고 뒤이어 개성공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100만평 부지가 조성되고 있는 개성공단은 온통 벌거벗은 황토 빛 일색이였다. 다리 밑으로 북한군인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군복과 걷는 모습만 달랐지 우리 군대와 거의 같은 형태로 이동하고 있었다.

북한 군인들은 덩치가 대체로 외소하고 나이가 젊어 보였다. 버스는 개성공단 내 1차로 조성된 5만평 부지를 끼고 돌았다. 한국토지공사, 호산에이스, 신원, 문창기업, KT개성지사 등이 보였다. 잘 지어진 건물들로 인해 북한 땅이 아니라 남한의 공단에 들어선 느낌이였다. 방문단은 개성공단관리위원회로 들어갔다.

시찰단을 맞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측은 남한에서 가져온 음료(커피,녹차)와 비스켓을 제공했다. 시찰단은 북측 여성 안내원과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이 여성 안내원은 자신의 고향이 사리원이며 사리원사범대학을 나와 이곳에 배치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찰단의 몇몇 인사들이 같이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물었다. 안내원은 흔쾌히 사진 촬영에 응했다.

북한 안내원들과의 사진 촬영이 금기사항에서 제외된 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인사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저 의향을 물어 보는 예의를 갖추었다. 필자도 한국화섬협회 안영기 회장, 한국의류산업협회 김갑중 전무 등과 함께 이 여성 안내원을 주인공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북한 사람을 만나면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첫 인사가 된 것 같다. 얼마 전 중국 상하이의 북한 음식점에서 한복 입은 북한 여성들과 기념 촬영을 하던 남한 사람들의 환한 표정이 떠올랐다. 앞으로 수년간 이런 인사는 계속될 것이다. 서로가 총부리를 겨누고 적과 적으로 만났던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인사(기념촬영)가 되풀이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남과 북이 어떤 형태로든 자주 만난다면 이런 풍경도 아마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어떤 인사들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만 빗장을 열고 경계의식을 허물어뜨리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지만 이런 만남조차 없다면 결국 서로에 대한 경계심만 높아질 뿐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내원과 사진촬영을 하는 사이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나와 시찰단을 반겼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 홍흥주 상무는 환영사에서"2004년 개발당시 개성시의 조그만 마을이였던 봉동리가 불과 2년 여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공단으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1단계 1백 만평 부지 조성을 위해 전력, 용수, 오폐수처리장 등을 건설해 조만간 세계 어느 곳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공단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은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투자를 확대해 남북화해와 상생의 협력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 하겠다"고 말했다. 홍 상무는 "섬유패션기업들이 가장 선두에 서서 개성공단 조성에 앞장서 민족화합과 한민족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앞으로 봉제업체 뿐만 아니라 화섬,면방,직물,염색 등 업스트림과 미들스트림 분야의 진출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경세호 회장은 인사말에서 "섬유산업이 우리나라 산업화를 견인했고 100억불 무역흑자에다 150여 개국 수출, 산업규모 세계5위 점유, 생산 고용창출 우위산업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나 현재 쿼터폐지, 원 달러 환율하락, 원자재가 인상 등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섬유패션업계가 개성공단 진출 및 투자를 통해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 회장은 "지난해 남북교역 10억 달러 가운데 섬유류가 19.7%를 차지해 남북교역 최대 품목 이였다"며"앞으로도 개성공단조성 사업의 중심에 섬유패션업계가 함께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환영사와 인사말이 끝나자 북측 안내원이 나와 개성공단의 개요(개성공단 추진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북한 안내원이 설명한 자료를 간추려 보면 대략 이렇다. 개성공단은 개성시와 판문군 일대의 총 2000만평의 부지를 3단계에 걸쳐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1단계 100만평 부지 조성과 함께 시범단지 2만8천여 평을 조성해 2004년도부터 입주가 시작됐으며 나머지 1900만평은 향후 남과 북이 협의를 거쳐 개발계획을 수립하기로 돼 있다.

1단계 100만평 개발은 현대아산과 토지공사가 2002년(준비기간)부터 2007년까지 총사업비 2205억원을 투입한다. 이 가운데 시범단지로 2만8천 평을 이미 조성해 15개 기업에 분양했다.

현재 4개 기업은 가동을 앞두고 있고 신원, 문창기업 등 11개 기업은 공장을 가동해 생산된 제품을 국내로 반입 판매하고 있다. 시범단지에 이어 본 단지에 대한 부지 조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올 연말이면 이 작업도 완료된다. 부지작업과 함께 폐수처리장, 용수시설, 폐기물처리장(내부기반시설) 등이 이미 착공돼 내년 상반기안에 완공된다. 외부기반시설인 전력(한국전력)과 통신(KT)설비도 계속 확충된다.

한국전력은 문산 개성간 송전선을 연결 10만 칼로와트를 공급할 예정이고 통신설비는 KT가 5층 3천평 규모의 통신센터를 올해안에 완공할 계획이다. 이동통신과 인터넷 개통도 북측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인프라 설비들이 완공되면 염색과 직물 같은 미들스트림 분야의 공장 건설도 가능하게 된다. 이 같은 인프라 구축에 맞춰 지난 2005년 9월 5만평의 부지가 분양됐는데 일반공장용지 17개업체, 협동화사업단지 2개 컨소시엄(6개업체) 아파트형공장용지 1개 기관이 선정 된 바 있다. 본 단지 1차 5만평 공단 조성에도 섬유봉제업체가 13개사였고 가죽,가방,신발 4개사를 합치면 거의 전부가 섬유봉제업체들로 채워진 것이다. 협동화사업단지도 섬유봉제업체가 4개사였고 가방, 가죽, 신발업체가 3개사로 이 또한 섬유봉제업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건설해 분양하는 아파트형 공장에도 거의 섬유봉제업종이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처럼 개성공단 건설에 섬유봉제업종의 기여도는 거의 100%에 육박하고 있다. 첨단업종이 들어갈 수 없는 특수상황이긴 하지만 섬유봉제업종은 개성공단 조성에 가장 큰 효자품목인 것이다.  설명회가 끝나고 질의시간이 이어졌다. 시찰단에 참가한 섬유패션업계 관계자들은 개성공단 내 봉제공장의 규모 확대를 비롯해 원부자재 및 완제품의 통관절차 간소화, 미국, 일본, 캐나다 유럽으로의 수출시 원산지 표기 문제, 북한 고급인력 충원 등의 문제점을 지적 개선 방안을 요청했다.

도레이새한 이영관사장은 “북측의 단순 기능직 인력 외에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 같은 인류 대학을 나온 고급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 사장의 질문 핵심은 개성공단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앞으로 북한의 고급 두뇌들을 채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방문단은 설명회를 마친 뒤 훼밀리 마트와 우리은행 등을 둘러보고 현대아산으로 향했다. 현대아산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 100만평 부지 조성을 위해 현대아산이 봉동리 일대를 온통 파헤쳐 놓았다. 파헤쳐진 흙더미와 돌 더미 아래로 실개천이 흘러가고 있었다. 실개천 위로 오래된 돌다리 하나가 보였다.

이끼들이 잔뜩 낀 대리석 돌다리를 보면서 오랜 질곡의 역사 속에 갇혀 있던 개성시의 옛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개성과 아무 연관이 없는 필자의 머릿속에도 짜릿한 흥분이 스쳐 가는데 개성에서 태어나 자란 인사들은 과연 어떤 감흥을 받았을까. 시찰단 가운데 한국의류산업협회 박풍언 회장이 개성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개성 방문의 감회를 물었다. 박 회장은 "개성시를 한번 돌아보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말을 다 잇지 못했다.

현대아산 사무실은 산을 깎아 만든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현대아산 임직원들이 나와 시찰단을 반겼다. 강당에서 현대아산이 제작한 홍보용 동영상 자료를 관람했다.

고 정주영회장과 아들 정몽헌 회장이 현대아산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는 동영상 자료였다. 이어서 현대아산이 진행하고 있는 공단조성 현황과 향후 계획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시찰단은 현대아산이 전시한 개성공단 조성 초기 사진 자료를 관람했다.

사진 자료들은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대북사업 성과물이 대부분이였다.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던 정주영 회장의 사진 자료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왜 대북사업에 애착을 가졌으며 앞으로 이 사업이 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젊은 나이에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정몽헌 회장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사진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옥상 전망대에 올라오니 개성공단 100만평 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부지 조성을 위해 땅을 파헤쳐 놓아 온통 황토 빛 이였다. 저 황토 빛 흙들이 남한의 시멘트와 철골 구조 속에 파묻히고 웅장한 모습의 공장으로 탈바꿈 할 것이다.남쪽에서 가져온 트럭과 건설 중장비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개성공단 부지 주변의 산들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 이였다.공단 조성도 해야겠지만 산에 나무를 심는 것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공단 부지 밖 개성시의 일반 주택(공동주택)들도 보였다. 주택 역시 남한의 아파트처럼 짓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북한 당국이 왜 공단 이외의 일반 주택 촬영을 금지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 주택들은 남한의 70년대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시찰단의 누군가가 혀를 찼다.어떻게 저런 주택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있었다.

남한과 북한의 생활수준은 의.식.주에서 엄청난 격차로 벌어져 있다.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개성공단이 확대 개발돼야 할 것 같았다. 아침에 비가 내려서 인지 흙더미가 촉촉이 젖어 있었고 그 위로 개천의 물이 흘러내려 진흙탕 길을 만들어 놓았다. 현대아산 임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시찰단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북한 식당 봉동관으로 향했다.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 안내원들이 특유의 북한 말로 반갑게 시찰단을 반겼다. 식당 안은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창문이 많이 없어 어두운 편이였다.

식당 테이블 위에는 미리 준비해둔 음식과 술이 놓여 있었다. 음식은 돼지고기, 평양순대, 생선부침, 김치 등등 여러 가지였다. 북한 주민들이 이렇게 먹을 수 있다면 남쪽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음식 수준은 북한 상류층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음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 여성 안내원들이 제빨리 추가 음식들을 가져 나왔다. 식당 안이 조금씩 소란스러워 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음악 소리도 들렸다.어느 정도 음식이 배달되자 여성 안내원들 가운데 일부가 앞 공연장으로 나가 음악과 노래를 선사했다. 공연장 앞쪽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영상화면과 노래가사가 함께 나와 서울의 대형 노래방에 온 느낌도 들었다. 어디를 가든 이런 진행은 거의 똑 같은 북한 식당의 광경이다.

북한 식당(봉동관)의 여성 안내원들은 대부분 음식배달과 함께 노래와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필자가 처음 중국에 소재한 북한 식당에서 이런 여성 안내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듯이 남쪽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북한 식당의 여성 안내원들의 활약상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 식당을 처음 방문한 인사들은 하나같이 고생한다며 여성 안내원들을 격려했다.북한 식당에서 남한 손님이 오면 꼭 들려주는 노래가 있다. 이 또한 빠지지 않고 나왔다.

"동포 여러분 반갑습메다"

여러 번 듣고 또 듣는 노래들이 많지만 이 노래만큼은 필자는 물론 다른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포]라는 말과 [반갑다는] 말이 함께 어울려 다가오는 묘한 감정들-아마도 한민족의 울분과 애환을 씻겨주는 노래가 아닐까? 시찰단 인사들은 북측 여성 안내원들의 흥겨운 노래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북측 안내원들은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경세호 회장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뒤 손을 맞잡은 채 흥을 돋우었다. 필자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그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잠깐 사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분단으로 인해 적과 적으로 서로를 미워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동포라는 동질감에다 반갑다는 인사가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었던 것 같다. 이 노래 말을 들으면 남이든 북이든 한민족이라면 누구에게나 진한 감동이 밀려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다르겠지만 전후 세대이면서 분단이나 이산에 대한 아픔이 전혀 없는 필자가 느끼는 감정이 이렇다면 다른 이들의 느낌은 이 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다소 부정적 견해를 가진 인사들도 없진 않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 감상적으로 북한에 다가가서는 안 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우리들만 마음을 열고 경계의식을 허물어 뜨려 불안하다는 인사도 있었다. 왜 우리가 조성하는 공단을 방문하는데 주머니를 열어 보여야 하고 북한 일반 주민들과는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마도 이번 시찰단에 포함된 상당수 인사들은 그런 불편한 마음을 내심 갖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산업계에서 보수적 성향이 강한 업종으로 분류돼 있는 섬유패션업종이 개성공단 사업의 최선두에 서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상당수 인사들은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 섬유패션산업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이나 북한의 다른 지역을 부지런히 두드려야 하며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 국가로의 진출 보다는 북한 진출에 더 큰 기대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기대감을 충족 시켜 줄 수 있는 개선방안이 보다 신속하게 사업주최자 측에 전달돼 실제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북한 여성 안내원들의 공연은 짧게 끝났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김정회 상무의 사회로 진행된 점심식사 행사는 개성공단 홍흥주상무, 경세호 회장의 건배 제의에 이어 개성 출신인 한국의류산업협회 박풍언 회장을 마지막으로 끝마쳤다. 점심식사가 진행되는 시간에 봉동관 내에 있는 상점은 술과 각종 기념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시찰단 인사들로 북적였다.

필자도 이곳에서 술을 한 병 구입했다. 달러로 15달러이니 원화로 1만5000원짜리 술이였다. 북한에서는 비교적 고급술에 해당한다. 상점에 진열된 상품들을 눈 여겨 보았다. 남한의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판단해 구매할 만한 상품은 별로 없었다. 북한 내 제조업체를 도와준다는 심정으로 구매하지 않는다면 살만한 상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시찰단 인사들의 의견 이였다. 그나마 술은 가장 인기가 있었다. 도라산 CIQ 면세점에서 파는 북한 술에 비해 월등히 저렴한 가격 이었다. 많은 인사들이 달러로 물품을 구매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인사가 이렇게 말을 던졌다.

“저 달러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면 좋겠지만 상층부 인사들만 살찌우고 미사일과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된다면 어떡하지...”

그 인사의 말처럼 필자가 구입한 술값이 북한의 일부 선택된 상층부 인사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우리기업들이나 금강산을 방문하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내는 이용료가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칼이 되어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위험 요인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남한에 돌아올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 보다는 민족화합과 통일이라는 큰 물결의 긍정적인 흐름에 희망을 품고 있고 또 그런 방향으로 한반도의 역사가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런 물결을 되돌려 놓을 만한 힘이 어느 개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개성공단을 찾은 시찰단 인사들은 알고 있는 듯 했다. 봉동관을 나와 시찰단은 신원 공장으로 향했다. 신원 의류공장은 개성공단 시범단지 1단계 100만평 부지 개발 계획 가운데 우선 2만8천평을 개발해 15개 기업에 분양(04년 6월5일)할 때 조성됐다. 현재 이 시범단지에는 신원,문창기업 등 11개 공장이 가동되고 있고 2개 업체가 생산설비를 준비중에 있다. 시범단지는 상하수도,도로포장 등 구조물공사가 99% 진행됐고 내부도로가 갖춰졌고 하루 600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임시폐수 처리장도 완공됐다.

신원 의류공장은 개성공단 초기 국내 언론을 통해 개성공단 내 대표적 공장으로 부각됐으며 준공 당시 북한 땅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개최해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특히 신원의 박성철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개성 공장에서 생산된 의류제품을 서울로 들여와 백화점과 대리점에 유통시켜 판매함으로써 주목 받기도 했었다.

이런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신원공장을 방문한다. 신원 공장에 들어서자 재봉기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일사분란하게 늘어선 재봉기 사이에서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쉴새 없이 옷을 만들고 있었다. 신원공장의 재봉기 가운데 국산 썬스타 재봉기가 눈에 띄었다. 신원공장에는 330명의 북한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북한 근로자들이 대부분 성실하고 손재주도 뛰어나 제품의 품질이 기대이상이다고 신원측은 밝혔다. 필자가 파악한 부정적인 기류-북측 근로자들이 미숙련공이여서 불량품이 많이 나온다는 일부의 주장과는 상반된 내용이였다. 방문자 라인을 따라 공장을 한바퀴 돌았다. 깨끗하게 지어진 건물은 한국내 어느 봉제공장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지어졌다고 느꼈다.

신원 공장을 나와 문창기업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창기업은 유니폼 작업복 등 단체복을 만들어 OEM으로 납품하는 의류업체다. 문창기업 역시 신원과 함께 2004년 6월 시범단지 조성 때 개성공단에 진출했다. 북한 근로자 610명이 근무하고 있어 신원 공장 보다 규모가 2배 가량 크다. 이곳 역시 국산과 일산 재봉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문창기업은 아시아나 항공사 유니폼을 만들어 납품할 만큼 유니폼 단체복 분야에서 우수한 품질을 인정 받고 있다. 공장을 돌아 나오면서 필자는 잠시 문창기업 사무실을 방문했다. 북한 근로자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북한 근로자는 근무환경이 좋고 대우도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였다. 컴퓨터를 켜 놓고 있어 인터넷이 되느냐고 물었다. 아직 인터넷은 개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 근로자들도 컴퓨터를 다루고 있으니 머지않아 인터넷이 개통되고 자유로운 정보 교류가 이루어 진다면 남과 북의 이질감도 급속히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두 의류공장을 끝으로 개성공단 방문 일정은 끝났다. 개성 시내를 돌아볼 계획이였지만 일정이 변경됐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개성공단만 방문하고 나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였다.

개성공단사업단과 현대아산의 야심찬 공단 개발 프로젝트를 자료와 동영상 설명회 등으로 들었지만 이 사업이 정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 않다.

"글쎄 좋긴 좋은데 장벽이 많아서.. 오긴 와야 겠는데 건축비가 만만찮네... 한-미 FTA가 체결돼야지.... 북한 정부가 투자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 해야지... 주변 인푸라가 갖춰줘야 하는데..."

이런 견해들은 일부 부정적 기류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이 대북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개성공단 역시 부정적인 견해와 냉소 어려운 난관 등을 넘어 지금 여기에 서 있지 않는가.

이미 시대의 기류는 철조망을 녹이고 지뢰를 파내 남과 북이 함께 생존의 길을 찾고 있는 단계로 진입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을 앞장 서 일끌었던 섬유패션기업들이 다시 민족화해와 번영, 통일 이라는 큰 길을 열기 위해 개성공단으로 가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이 물결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조영준 기자 ⓒ 세계섬유신문사)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 okfash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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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중국 의류시장 보고서(59) (2007-02-14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