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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도약하는 중국, 급변하는 베이징(종합)
텐진 섬유교역 중심지, 현지기업인 중국화 필수, 조선족도 적극 활용해야
등록날짜 [ 2002년06월30일 00시00분 ]

이 기행문은 본사 조영준 발행인이 2002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국 베이징(북경) 세계무역센터에서 개최된 [인터텍스타일 베이징]과 27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국제전시센터에서 개최된 [2002 중국 국제복장 전시회(CHIC2002)], 중국 방직공업국에서 개최된 [한-중 섬유협력간담회] 취재 차 텐진(천진)을 거쳐 베이징(북경)으로 가면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다. 본지는 이 기행문을 시리즈로 게재한다.(편집자주)

비행기에서 촬영한 텐진시 전경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 30분도 채 안돼 비행기는 중국 텐진 공항에 착륙했다. 기내에서 점심을 먹고 숨을 돌리기도 전에 중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만큼 중국은 우리에게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텐진은 광활한 대지의 연속이였다. 산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넓은 평야가 베이징까지 이어진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땅들이 저렇게 남아있는 것이다.  어디 텐진 뿐일까. 상하이(상해), 칭다오(청도), 선전(심천), 다롄(대련), 선양(심양) 등 중국의 중요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진 넓은 땅과 풍부한 인적 자원들은 한국섬유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저 넓은 대지 위에 얼마나 많은 공업시설(제조업)과 빌딩들이 들어 설 것인가. 중국은 이제 WTO에 가입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세계 무대에 등장 할 것이다.

비행기에서 촬영한 텐진 주택지구 도약하는 중국을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떤 대응과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텐진은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섬유패션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인천에서 배를 통해 엄청난 물품들이 양국을 오가고 있고 매일 한번씩 비행기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물품들도 텐진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베이징은 세관절차가 까다롭고 워낙 많은 물품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지체되기 일쑤여서 우리 기업들은 텐진을 선호한다.

그러나 텐진 역시 세관절차가 과거와 달리 까다로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물품들이 홍콩을 통해 밀수형태로 들어갔지만 이제는 정식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천우익스프레스 신명상 사장은 말했다. 천우익스프레스는 텐진 지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세관 업무와 제품 운송을 맡아서 대행해 주고 있다. [한섬]이나 [데코 ]같은 패션기업들과도 거래를 하고 있다.

신 사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의 세관절차를 제대로 몰라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고 관세담당 직원들과의 관계가 정립돼 있지 않아 제때 물품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만난 신 사장은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자신의 사업장까지 안내했다.

신 사장은 10여 전 텐진으로 건너와 많은 고생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국을 배웠다고 했다. 그때는 한국 기업들도 많지 않았고 중국인들도 한국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 어려운 점이 무척 많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한국 하면 모두 북한(조선)으로 오인하기 일쑤였지요. 그런 상태에서 중국 속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여서 더욱 어려움이 많았지요"

대한항공 비행기를 감시하는 중국 공안직원 수영안경 제조업체인 가람스포츠 김철수 사장도 지난해부터 중국시장에 진출했다. 김사장 역시 1년에 우리 돈으로 천 만원 이상씩 써가며 중국을 배우고 있다. 중국은 알면 알수록 어려운 땅이라며 김 사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김 사장은 우리와 같은 일정으로 텐진에 들어와 선양(심양)을 거쳐 28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선양의 거래처를 방문해 대금결제를 받고 백화점 입점 상황과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을 체크할 목적으로 중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직접 중국 백화점에 입점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현실임을 강조하면서 현지에서 한국 기업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파트너를 물색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인구가 얼마입니까. 아직 한국처럼 스포츠 문화가 발달된 것은 아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수영 인구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다이빙과 수영에서 세계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인기가 대단합니다. 중국 인구의 1%만 수영에 관심을 가져도 한국시장 보다 나을 것입니다."

김 사장은 텐진과 선양, 베이징 등을 중심으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장을 개척해 나가면서 직접 중국을 공부하고 스스로 중국화가 되어야만 중국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던 일본 기업들이 곳곳에서 실패의 쓴잔을 마시며 뒤로 물러났고 칭다오(청도) 지역의 우리 나라 섬유기업들도 성공 보다는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중국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든 곳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나라 섬유패션기업들이 가야 할 땅인 것만은 분명한 것이고 하루라도 빨리 중국을 배우고 중국화 하는 마인드를 길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국제공항 같지 않은 허름한 텐진 국제공항 수영복제조업체인 서영상사 이승우 사장도 그런 이치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텐진에 사무실을 열었다. 이 사장 역시 초기 진출이라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중국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선족 여사원을 두고 현지 인들과 교감을 가지면서 현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일본과 달리 조선족이 있기 때문에 중국 진출에 유리한 잇점을 안고 있다. 조선족과의 갈등과 반목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는데 걸림돌이다.

그런 문제들은 한국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인식전환을 통해 풀어야할 과제다. 일본인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 내에 언어가 소통되는 민족이 있는 대만과 한국을 부러워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우리에게 있어 조선족은 중국 진출에 중요한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은 착하고 꽤 부리지 않고 일도 열심히 잘 합니다. 우리 기업인들이 IMF 때 체불한 채 달아나고 종업원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지 않아 인식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한국 내에서 조선족 불법 체류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등 나쁜 이미지를 심지 말아야합니다. 물론 조선족 중에도 우리 기업인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몰지각한 이들도 없진 않지만 모두가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줘"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중국 한족과 조선족을 멸시하면서 중국 내에서 원만하게 사업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현지 기업인들은 강조했다.

왜 한국 기업인들이 중국에서 피살되고 있으며 공장 운영에 애로를 느끼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올 한해만 중국에서 한국 기업인 3명이 피살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있어 중국 여행이 무섭고 겁나는 코스로 전락한 것이다.

"돈이 있다고 중국에서 거들먹거려서는 안됩니다. 우리 한국인 보다 돈이 상상외로 많은 한족들이 있지만 이들은 절대 거들먹거리지 않습니다. 환율 차이가 좀 난다고 흥청망청 쓰고 현지처를 두고 종업원과 불륜을 저지르는 이런 기업인들이 중국에 들어와 성공 할 수 있습니까. 텐진에서 초기에 닦아 놓은 좋은 이미지가 많이 퇴색 됐습니다. 모두 몰지각한 일부 기업인들 때문입니다."

화북고속도로변에 설치된 패션제품 광고 텐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중국에 진출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 현지화가 되려면 한족과 조선족으로부터 환영받는 기업이 돼야하고 중국 내 팽배해 있는 사회주의 의식의 근로자들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충언했다.

특히 중국을 싸구려 시장으로 봐서는 안되며 중고 설비들을 들여와 대강대강 사업을 하겠다는 발상또한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중국에는 현대그룹과 같은 재벌들이 적어도 60 만 명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기업인들이 알아야 한다. 15억 중국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텐진의 현지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최근 외국으로부터의 중고 설비류 유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섬유 등 중국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신규공장 건설과 설비류 도입에 까다로운 조건과 무거운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산 화섬제품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강화해 나가는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에 현재 중국이 취약한 분야인 정보통신(IT)이나 첨단 전자 산업의 경우 투자를 권장하고 있고 설비류 도입에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등 자국산업 육성과 보호정책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가장 애로를 느끼는 것은 중국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사회주의제도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종신고용제를 적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한번 고용한 직원에 대해서는 퇴직 후에도 일정 비율의 임금을 주어야 한다. 고용인원 이외에 퇴직직원이 몇 명인가에 따라 제조비용이 상승 할 수 있다는 것이다.

LG전자 텐진 현지 공장 전경 공장 부지나 대지 등은 개인 소유가 금지돼 있고 임대가 원칙이다. 그러나 장기 임대가 가능하고 연장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다고 했다. 텐진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상당수 기업들이 집단 취락 지구안에서 주택을 개조해 사무실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한인상공회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텐진에는 섬유기업과 전자계통의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으며 통닭집, 온천, 사우나장, 음식점 등 한국인이 경영하는 사업체가 곳곳에 많았다. 천우익스프레스 신명상 사장 등 텐진에서 만난 현지 한국기업인들은 텐진,상하이(상해), 다롄(대련), 칭다오(청도) 등 중국에서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마인드를 갖고 성공적으로 정착 할 수 있도록 언론이 중국 현지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등 중국을 알리는데 적극 앞장서 줄 것을 주문했다.

신 사장은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한국인 기업 피살 사건과 탈북자 송환 등 좋지 않은 시기라며 우리들이 베이징까지 안전하게 이동 할 수 있도록 차량을 주선해 주는 등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텐진에서 베이징의 중심 호텔로 가기 위해서는 베이징시 진입이 가능한 고급 중형 택시를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텐진에서 베이징까지는 택시를 타고 정상적으로 달려 1시간 30분정도 걸리기 때문에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정도가 됐다. 우리는 현지 기업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텐진에서 화북고속도로를 타고 베이징을 향해 달렸다.
 

중국 두뇌 기술 앞세운 인해전술 위협적, 텐진 등 도시 개발 박차 세관업무 전문가 필요 


북경시 통과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곳 베이징으로 가는 화북고속도로 주변에는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텐진(천진) 외각에는 6~70년대 우리 나라 농촌을 연상 할 만큼 집들이 작고 보잘 것 없었다. 거리의 사람들도 아직 옷차림이 세련되지 못했고 가끔 중산복(70년대 중국 농민들의 대표적 의복)을 입은 농민들도 눈에 띄었다.

텐진 시내를 빠져 나오자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빈 들판만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텐진의 넓은 땅덩이가 실감나게 다가왔다. 저 넓은 땅 에서 나오는 중국 농산물 때문에 우리 나라 농촌이 경쟁력을 잃고 있구나. 어디 농산물 뿐인가. 대부분의 공산품이 모두 [메이드 인 차이나]로 한국 시장을 누비고 있지 않은가. 섬유도 예외일 수 없다.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생산되는 섬유 제품들이 한국시장을 잠식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의류가 한국시장으로 유입돼 [메이더 인 차이나]를 떼 내고 한국 산으로 둔갑돼 팔리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텐진 현지에서도 이 같은 사업은 돈이 되는 사업으로 간주되고 있을 정도였다.

한국 기업인들은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가기 위해 반출물품의 가격을 터무니 없이 낮춰 신고 한다. 중국 세관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자주 세관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다시 한국에서도 세관의 봐주기가 없다면 물품 반입이 안 된다는 것. 원리 원칙을 지키지 않는 우리 기업인들의 이 같은 편법이 불합리를 낳고 한국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텐진 거리에 앉아 있던 중국인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중국인들은 대부분이 깡마른 얼굴에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에 즐비하게 서 있다. 그들 가운데는 한국동란 때 인해전술로 유엔군에 맞섰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후손들도 많다고 했다. 그들 가운데는 만주의 조선족도 많다고 했다. 저렇게 많은 노동 인력들이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중국인은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그 때처럼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인해 전술이 아니라 두뇌와 기술까지 앞세워 전세계 산업계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택시기사 북경시로 출입하기 위해 서류작성 갑자기 콧노래를 부르던 중국인 택시기사가 창 밖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LG전자 텐진공장이 그곳에 있었다. 공항에서 만난 LG전자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LG전자가 중국 생산에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을 수시로 내 보내 중국 시장을 배우도록 한다고 했다. 그는 연수교육를 받기 위해 10일간의 일정으로 텐진에 간다며 LG전자의 중국 현지화 전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었다.

고속도로를 따라 텐진 외각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다. 섬유분야는 봉제기업들이 초기 텐진 진출을 선도했고 지금도 이들 성공한 봉제기업들이 텐진에서 왕성한 기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섬이나 데코는 현지인들이 잘 아는 한국 패션기업이다.

텐진을 벗어나 베이징까지 1시간 30여분 동안 달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넓은 들판 뿐이였다. 그 넓은 들판에 유난히 양떼들이 많이 목격됐다. 중국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양모 생산도 머지않아 호주를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씩 대형 공장들이 보였지만 우리나라 구미나 울산처럼 대규모 공단지역은 보이지 않았다. 화북고속도로 주변에는 곳곳에 대형 옥외 광고 간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주로 중국석화(석유화학) 같은 대형업체와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의 광고 간판들이 많았다.

패션제품을 홍보하는 브랜드 광고도 목격됐다. 베이징이 가까워지자 삼성전자를 홍보하는 간판이 하나 보였다. 아마도 텐진, 베이징 보다 상하이나 칭다오, 다롄 등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더 많이 진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고속도로에서 대우 차가 눈에 들어 왔다.

관광 나온 인민복 차림의 노인 대부분의 차량들은 스웨덴, 독일 등 유럽에서 수입된 기종이 많았다. 우리가 탄 택시는 산타나 중형이였다. 이 정도의 중형 택시 이상만이 베이징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이 부여돼 있었다. 북경이 가까워지면서 이 광고 간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패션 브랜드를 홍보하는 광고 간판들이 많았다. 오히려 우리 나라 보다 더 많은 패션 제품 광고 간판이 세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이징 톨게이트를 지나자 마자 [가파치]라고 쓰여진 간판과 함께 가파치 베이징 공장이 보였다. 택시기사는 베이징 시내 진입을 위해 통행증을 끊어 차 앞 유리창에 붙였다. 

베이징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한참을 달렸다. 북경의 크기가 우리 나라 경기도 보다 크다고 하니 도시 중심부까지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친절한 중국인 택시기사는 영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했다. 오케이나 땡큐와 같은 단어에도 그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의심이 갔다. 중국인들도 프랑스인들 처럼 의도적으로 자국어를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이 영어와 함께 이제 중국어도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것 때문에 갑자기 자괴감이 밀려왔다.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영어와 함께 중국어도 필수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중국 땅에서 우리 기업들이 사업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필히 중국어를 익혀야 하고 중국어에 능통한 중국인(한족)을 채용해야 한다는 현지 기업인들의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특히 중요한 계약은 조선 족 보다는 한족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말에 중국도 역시 인종차별적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겠구나 미루어 짐작했다. 어쩌면 머지않아 대금결제도 달러가 아닌 중국원화로 해야할 때가 올 것이다. 

오성기가 펄럭이는 천안문 광장 과거 한국이 중국의 속국 이였으니 그들의 뇌리 속에는 한국에 대한 식민사관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카페에서 동양인을 대하는 서양인 주인의 오만한 태도처럼 중국인들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들의 본성을 서서히 드러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일본인과 서양인에 대한 반감에 비한다면 우리는 그래도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력한다면 중국 시장은 그렇게 난공불락만은 아닐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 기업들이 철저하게 중국 현지화 전략을 추구해 나간다면 중국시장이 결코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왜 일본기업들이 중국에서 실패의 쓴잔을 마셨는지 우리는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

청도 지역에서 초기 진출한 우리 나라 섬유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힘들었던 요인이 무엇이였는지 우리 기업들은 이점을 염두에 두고 중국을 파고 들어야한다고 텐진의 현지인들은 강조했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택시 기사는 북경에 들어서자 중국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가며 트레이드스 호텔(국무반점/國貿飯店) 앞에 우리들을 내려 주었다.

[인터텍스타일 베이징 2002]전시회가 열리는 [차이나월드 트레이드센터]는 베이징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차이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중심으로 반경 1키로 안에 거대한 중국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기관(행정, 입법, 금융)들이 육중한 모습으로 들어 차 있었다. 잘 지어진 이 건물들은 중국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북경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 아래 도시를 다듬고 있었다.[차이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도 2008년에 1백 층 이상 되는 고층 건물이 지어질 것이라고 했다.

9.11테러로 미국의 세계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머지않아 북경이 세계 최고의 고층 빌딩을 보유한 국제 도시로 부각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고 했다. 북경이 산업 도시가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강한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도시이긴 하지만 앞으로 고급제품이 많이 팔리는 거대한 소비도시로 탈바꿈 할 것이란 전망을 내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북경 시민들 북경에 들어찬 고급 백화점들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북경에는 10여 개의 최고급 백화점이 들어서 있고 매장마다 세계적인 명품들이 입점 해 상상외로 비싼 제품들이 팔리고 있었다. 우리들을 안내하는 가이드(김청하)는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옷을 많이 구매한다며 한국에서 옷을 싸는 것이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뿐만 아니라 백화점도 중국 보다 더 싸다고 했다. 우리는 눈으로 그것을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실제 백화점을 돌아보니 서울의 롯데백화점이나 갤러리아백화점에 뒤지지 않는 매장 규모에다 전시된 상품들도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가 즐비했다. 가격도 놀랄 만큼 비쌌다.

우리나라 원화로 환산해 1백 10만원 가량 하는 쟈켓이 전시돼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의 패션기업인 코오롱상사가 수입해 팔았던 이탈리아 수제 신사복 [프렌체스코 스말토]가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스말토 양복 한 벌을 사 입으려면 2백 만원 이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코오롱그룹 이웅렬회장이나 재벌 2세들, 연예인 등이 즐겨 입을 만큼 비싼 옷 이였고 북경에서도 재벌이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옷이다. 그런데도 잘 팔린다고 한다.

옷을 잘 입지 않는 중국인들에게 이같이 비싼 제품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보면 중국에서 옷을 팔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만 했다. 잘 입지 않고 잘 씻지 않는 중국인들이 이제 서서히 잘 입는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입는 것보다는 먹는 것에 더 치중하고 있는 이유가 과거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가난과 궁핍 때문이라고 가이드 김청하씨는 말했다. 아버지가 조선족이고 어머니가 중국인인 김씨는 자신이 어릴 때(70년대) 옥수수 죽을 먹을 만큼 가난했지만 지금의 중국은 자신도 놀랄 만큼 급변했다는 것.

북경의 한 유명 백화점 매장 전경 백화점에는 여성복과 캐주얼복 골프복 속옷 아동복도 세계 유명 브랜드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 브랜드를 찾았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브랜드는 없었다. 한국의 패션기업들이 북경에 진입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북경의 시장 가치를 낮게 본 것일까. 제일모직이 상해에 매장을 열었다고 들었지만 북경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중국의 백화점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잘못 진출 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던 가람스포츠 김철수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매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낮익은 브랜드가 보였다. [라코스떼]였다. 우리 나라에서 동일드방레가 라이센스로 전개하고 있는 [라코스떼] 브랜드가 그곳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가격을 보니 우리 나라 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백화점에 진열된 해외 브랜드는 대체로 모두 가격이 높았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싸게 매긴 것일까? 아니면 중국 정부가 수입품에 대해 비싼 관세를 매기기 때문에 가격이 높아 진 것일까? 이유야 어쨋든 이 비싼 의류들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3~4백만원 하는 대형 TV가 한국 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천안문 거리에는 씻지 않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베이징 백화점에는 화려한 제품들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거리에는 우리 나라 70년대 콩나물 시루 같이 사람들을 가득 채운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버스는 3등급으로 매겨져 있었다. 돈이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을 버스는 구별해 내고 있었고 택시 역시 그런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느낌 이였다. 북경에서 택시를 탈 수 있는 사람은 관광객이 많고 경제적으로 중상류층에 속한다. 택시 비용은 한국 보다는 저렴했다.

붉은 글씨가 새겨진 천안문 광장에 중국을 상징하는 커다란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천안문 광장에 펄럭이는 붉은 오성기 밑에 시골에서 올라온 듯한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무언가 골똘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노인은 과거 인민을 해방시키고 모두가 평등해 질 수 있다고 외친 모택동을 흠모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얼굴에는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히 변화해 가는 세태가 못마땅 한 듯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북경에서 중산복을 입은 노인들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인민을 해방시킨 모택동 보다 인민에 배를 채워 준 등소평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첫날 돌아본 북경의 야경은 사회주의가 아닌 화려한 자본주의 국가의 모습이였다. 즐비하게 들어선 대형 호텔과 화려한 네온싸인으로 둘러 쌓인 고급 백화점들이 북경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베이징 부유층 명품 선호 의식 높아, 초고가 상품 인기 선진국 패션 브랜드 백화점 장악

차이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주변 전경 다음날 우리들은 [인터 텍스타일 베이징 2002] 행사장이 있는 [차이나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돌아 봤다. 넓은 대지 위에 고층 건물들이 빽빽히 들어 서 있고 지하에는 지하도시가 형성돼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우리나라의 삼성동 무역센터 지하도시를 연상하게 했다. 그러나 아직 지하철과 연계 돼 있지 않아 삼성동처럼 사람들이 붐 비는 공간은 아니었다. 호텔과 전시장 무역센터가 지하도로를 따라 연결 돼 있고 식당가와 쇼핑센터 오피스텔 레저센터 등이 들어서 있었다. 

실내 스케이트장에서는 중국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트레이드 호텔을 나와 전시장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세계적인 고급 의류 브랜드가 판매되고 있는 매장들이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복 브랜드 [데코]를 만날 수 있었다. [데코]매장은 지난 2001년에 문을 열었다. 지하쇼핑센터는 북경의 고급백화점에 비해 손색이 없을 만큼 매장 분위기가 화려하고 깔끔했다. [데코] 외에도 낮 익은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들이 매장을 열어 놓고 있었다.  

일본 브랜드인 신사복 [다-반] 매장이 눈에 띄었다. [다-반]은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다반이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에서 팔고 있는 고가 제품이다. 신사복 한 벌 평균가격이 60-70만원(원화기준) 하는 것 같았다. 중국인들의 한달 평균 월급이 우리 돈으로 25-30만원 정도라고 하니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매장이 유지되고 옷이 잘 팔린다는 것은 중국인들의 수입이 우리가 예상하는 수준을 뛰어 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중국인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도입되면서 돈 맛을 알게 됐고 대부분이 돈을 모으는데 열중하고 있다.

중국 백화점의 아동복 매장 그래서 70년대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랬듯이 안 쓰고 안 입고 돈 모으는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다만 먹는 것만은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음식만큼은 우리 나라 보다 월등이 저렴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을 옷 입은 모양새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준 재벌 수준인 사람도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중국 관료들과 기업인들이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뒤로 받는 부수입이 많아 실제 경제력은 우리 들의 상상을 뛰어 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아무리 부패 척결과 뇌물 청산을 외치고 있지만 거대한 중국을 깨끗한 자본주의로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인들 가운데 인기 직종으로 정부 관료와 세관 기업인, 변호사 등을 꼽았다.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층민의 소비에만 기준을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지에 진출한 기업인 가운데는 중국을 너무 과대 평가하지 말 것도 조언하고 있다. 13억 숫자에 너무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아직 경제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결실을 가져 다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매장의 인테리어를 눈여겨 봤다. 한국 백화점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했다. 지하 매장만을 보고서는 이 곳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전혀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슈퍼마켓에는 우리 나라의 대형 마켓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북경에는 이미 다국적 대형 할인 마트들이 상륙해 성업 중이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마트가 진출해 유통 쪽에서 중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트를 나와 우리나라의 남대문 동대문 등 재래시장과 비슷한 북경의 재래시장을 돌아보았다. 북경에는 도시 곳곳에 이같은 재래시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고 했다. 베이징 중심가에서 거리 멀지 않은 곳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판매되는 의류 제품의 대부분이 가짜 브랜드를 달고 있었다. 조그만 길을 따라 촘촘히 들어선 점포에서 판매원들이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처럼 쪼그리고 앉거나 선 채로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점포 가득히 쌓여 있는 의류제품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가 많았다. 모두가 가짜였다. 백화점에서 본 브랜드가 똑같이 모방 돼 판매되고 있었다. 이런 장소에서 팔리고 있지 않다면 가짜(짝퉁)를 진짜와 구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코스떼]를 모방한 의류에서부터 [울씨],[폴로] 등 누구나 알 수 있는 브랜드가 붙여져 있었다. 우리나라의 [XIX]도 보였다. 

북경 재래시장에 나도는 가짜 [라코스테] 의류 중국이 가짜 모방제품(짝퉁)들로 판을 치고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하기야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가짜 브랜드를 많이 만들어 팔았고 지금도 재래시장에는 가짜 브랜드가 범람하고 있으니 중국만 흉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 같았다.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앞으로 가짜 브랜드에 대한 단속과 지적 재산권 문제 등이 국제무역 분쟁의 불씨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그 같은 행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얼마나 성의를 갖고 대응 할 것인지 또 중국 정부의 단속과 규제가 있다한들 거대한 중국 대륙의 시장을 과연 제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가짜 브랜드의 범람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패션 제품의 모방은 중국에 진출하면서부터 미리 예상을 해야한다.

직물도 마찬가지다. 눈으로 감지 할 수 없을 만큼 거의 똑같은 브랜드가 나돌기 때문이다. 그 같은 현상은 중국 내수시장에 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해외시장에서도 그런 문제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섬유 수출의 견인차였던 화섬 직물류가 중국산의 모방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던 전례가 있다. 과거에는 기술이 유츌되지 않아 품질로 가짜를 판별해 냈다지만 지금은 중국의 모방 제품들이 품질에서조차 차이가 나지 않아 곤욕을 치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재래시장을 나와 베이징 거리를 돌아봤다. 북경거리 곳곳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롯데리아 북경점과 노래방, 룸쌀롱, 사우나장 같은 유흥시설들도 한국인들에 의해 북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섬유와 패션은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북경이 상해와 달리 경제 발전 속도가 느리고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진출에 어려움이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렇지만 북경이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이고 중국을 움직이는 핵심부처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우리기업들이 서둘러 북경에 진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경의 고급 백화점에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넘치는 북경 재래시장 전경 거리를 오가는 북경시민들의 옷차림은 수수했다. 그러나 그들이 먹는 것 중심에서 벗어나 입는 것으로 눈을 돌릴 때 폭발적인 수요가 예상된다. 북경의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동양인 가운데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을 구별해 내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옷차림이다. 일본인들은 그래도 한국인 보다는 옷을 좀더 세련되게 입는다고 한다. 이 말은 원단이 좀더 고급이고 컬러가 한층 밝다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인은 중국인 보다 더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 한국인에게 같은 원단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혀 놓으면 잘 구별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옷을 싸 입거나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입고 거리에 나선다면 쉽게 구별이 안 갈 것 같았다.

중국인들은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고 붉은 색과 검정색을 선호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70%가 남자들이고 거의 대부분이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도 대부분 어두운 색깔의 옷을 선호하고 있었다. 아직 패션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90년대초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받은 첫 느낌은 거리 시민들의 옷차림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을 연상할 만큼 다양하고 원색의 물결처럼 보였다.

그 당시 서울 거리 시민들의 옷차림은 거무티티한 어두운 면이 강했다. 몇 년 뒤 서울도 유럽의 선진 도시처럼 패션에 대한 감각을 찾았고 어두운 컬러 비중이 많이 줄었든 것처럼 북경도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중국 정부는 인구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한 가구당 한 자녀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를 더 선호하게 됐고 호적에 없는 여아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이 섬유와 패션에서 중국 진출을 본격화 할 경우 이 같은 중국의 생활풍속과 인구비율 성향 등을 꼼꼼히 연구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오후 베이징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중국방직공업국을 방문키로 했다. 오후 비행기로 한국에서 섬산연 안영기 부회장을 단장으로 한국섬유단체 대표들이 북경에 들어오기로 돼 있었다. 잘 지어진 북경의 고급 빌딩 중국방직공업국 앞에서 우리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조상호 이사 등 일행을 만났다. 다음날 한중섬유산업회의 예비회담 준비를 위해 사전 조율 차원에서 방직공업국을 방문한 것이다.

중국방직공업국은 기자의 방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방직공업국 출입은 물론 내일 예비 회담 참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우리측 대표단 역시 이 문제가 양국간 예민한 사안이기 때문에 언론 비공개를 요구했다. 중국은 과거 한국산 화섬제품의 덤핑 문제가 거론되자 아예 한국섬유업계와의 접촉 자체를 무기한 연기했었다.

그 당시 중국 방직공업국은 정부 산하 단체였고 공무원들은 우리측의 로비를 의식한 것 같았다. 그때 회의 연기를 선언한 후 중국측은 일체 접촉을 꺼렸고 우리측에서는 한국화섬협회와 섬산련이 나서 중국과의 회의 재개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이다. 2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제 중국방직공국은 정부산하에서 떨어져 나와 외관적으로는 민간단체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주의체제하의 관료들이 방직공업국을 움직이고 있고 그들의 뇌리 속에는 폐쇄적인 사고들이 가득 차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우리는 한중 섬유산업예비회의가 우리측(섬산련)의 적극적인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감지했고 그것이 다소 굴욕적이긴 하나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어야만 국익에 보탬이 된 다는 점을 인식해 중국방직공업국 관료들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 섬유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방직공업국과 돈독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하고 그들과 보조를 맞춰 우리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져 갈 수 있어야 한다. 시기가 다소 늦긴 했지만 섬산련의 그 같은 노력은 한국산 화섬제품의 덤핑제소 문제와 화섬기업들의 공장이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텍스타일 전시회 장소-차이나월드트레이드센터 중국은 2년 전 한국섬유업종 단체와 정부 주무기관장이 참석하는 한 중 섬유산업회의를 서울서 개최키로 잠정 합의했으나 한국산 화섬제품(원사,원면칩) 덤핑 문제가 다시 거론되자 아예 한국 섬유업계와의 접촉 자체를 무기한 연기했던 것이다. 그 이후 2년만에 섬산연이 나서 다시 중국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중국이 한국산 화섬제품에 대해 덤핑제소를 내비친 것은 중국내 화섬산업이 팽창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한국화섬협회는 중국 화섬사들로부터 한국산 화섬제품에 대해 반덤핑 제소 움직임이 포착되자 대중국 외교정책의 필요성을 감지했고 부랴부랴 중국방직공업국 등 중국 정부와의 접촉을 시도했었다.

당시 한국화섬협회 이만용부회장은 협회차원에서 여러번 중국을 방문 방직공업국 인사들을 만났으며 중국내 화섬사 주요인사들과도 교분을 쌓았다. 그러나 민간단체만으로는 중국 정부 인사들과 접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산자부 생활공업국 김칠두국장(현 산자부차관보)까지 나서 대 중국 접근정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었다. 그런 노력 때문이였는지 마늘 분쟁이 터졌을 때 중국측은 보복관세 조치에서 화섬제품을 포함시키지 않았었다. 그 당시 화섬 제품은 보복관세 조치 품목 1순위에 올라 있었고 외교가나 정부에서도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고 있었지만 결과는 폴리에틸렌과 핸드폰이 마늘 대신 보복관세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한중섬유산업회의 참석차 방중한 한국대표단과 함께 그 사건 이후 한국화섬협회는 대중국 외교를 더욱 강화했다. 2000년 11월에 있었던 휴비스 창립식에 중국 화섬협회 젱지이 이사장을 초청해 세라톤 워크힐 호텔에서 김칠두국장, 이만용부회장과 함께 덤핑제소시 사전에 통보 할 것 등을 명시한 비망록을 작성했으며 중국화섬사 주요 대표들을 대거 초청하기도 했었다.

이후 섬유업계는 대중국 외교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섬산연이나 산자부에서도 중국 방직공업국과의 교류를 서둘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 내렸던 것이다. 김칠두 국장은 그 당시 중국과의 섬유산업 연례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 했음을 알려왔고 세계섬유신문이 이 사실을 국내 특종으로 보도 했었다. 그러나 화섬제품의 덤핑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그 때 회의 연기를 선언한 후 중국 측은 일체 접촉을 꺼렸다.

세월이 흘러 이제 중국방직공업국은 정부산하에서 떨어져 나와 외관적으로는 민간단체로 바뀌었다. 우리 나라의 섬산련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중국 방직공업국 산하에는 크고 작은 섬유 패션관련협회들이 있고 그 협회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 상당수가 과거 방직공업국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방직공업국이 민간 단체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주의체제하의 관료들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뇌리 속에는 폐쇄적인 사고들이 가득 차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섬산련은 그날 회의 전 까지도 자신 있게 한.중 섬유산업회의 서울 성사를 낙관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과연 한. 중 섬유산업회의가 열릴 수 있을 것인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날 회의는 방직공업국에서 열렸고 그 자리에는 안영기 섬산련 부회장 등 8명의 한국측 섬유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중국 방직공업국은 우리측의 통역을 회의석상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대신 방직공업국내의 통역사를 택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들 위주로 회의를 진행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 참석 대표들에게 회의 결과를 물어 보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장 중요한 한. 중 섬유산업회의 개최를 합의했는가에 대해서도 결론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측이 차후 통보키로 했다는 것이였다. 중국은 급할 게 없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하기야 중국은 급할 것이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기 저기서 회의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급한 사람이 달려오게 돼 있다고 그들은 믿는 것 같았다. 그것이 중국이다.

우리가 중국인들의 만만디 정신을 비웃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있는 것이다. 주변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아니더라도 만나자고 하는 나라가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식이다. 그렇다고 중국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가까이 오도록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나라 기업들이 대중국 진출을 원활하게 진행해 나갈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선진국들이 중국 시장을 파고들고 있고 다국적기업들이 여기저기서 중국 현지화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중국과 가깝고 조선족이 만주에 터전을 잡고 있으면서도 그들과의 교류가 의외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애로를 느끼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정부 단체간 협력의 틀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마침 우리나라 섬유 대표단이 북경을 방문한 시기에 중국과 우리 기업들간의 대규모 만남이 있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한. 중 경제심포지움이 북경에서 열렸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비롯해 전경련 소속 대기업 대표들이 대거 중국에서 심포지움을 갖고 한.중 교류확대를 위한 만남의 장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 한.중 섬유산업 예비회담은 당일 간담회에서 확답을 받아내지 못했다.(그 뒤 중국측으로부터 한.중 섬유산업회의 개최를 성낙(?)받았다고 섬산련은 공식 표명했다.)

북경 놀라운 변신 세계 중심 도약 박차 일본 긴장 중국 팽창정책 주변국 위협 

 

행사에 초청된 이탈리아, 일본 기자와 함께 우리는 베이징 트레이드스 호텔(국무반점)에서 각국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국의 섬유산업 현황과 중국의 발전상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서구의 기자들은 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았다. 우리는 서구 기자들보다는 일본과 대만 기자들과 더 가까워졌다. 의사소통도 소통이지만 인종적으로 서양인은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동양인에게서 더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일본 JTN(자매지:일간 섬유신문/아시아텍스타일)의 고바야시 편집장은 10년 전 베이징 방문 이 후 다시 베이징에 들어와 보니 입이 벌어질 만큼 변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일본의 섬유산업이 중국에 눌려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중국 진출에 성공한 한국 기업들을 취재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바야시 편집장은 한국과 일본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상황이 되었다며 중국의 변화와 발전이 양국의 섬유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해 개최된 일본국제섬유기계전시회(오테마스) 마저 유럽의 이트마(ITMA)에 눌려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 졌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오테마스에 한국섬유기계업체들이 대거 불참한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일본섬유산업의 위기감은 고바야시 편집장의 얼굴에 그대로 투영돼 있었다. 베이징 거리 곳곳에 세워진 육중한 고층 건물들을 보면서 그는 놀라움과 함께 일본 기업들의 앞날을 걱정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일본인들은 그 동안 사회주의에 갇혀 있었던 중국인들을 알게 모르게 얕잡아 보았고 우리나라 기업인들 역시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국을 우습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너무 성급하게 중요 기술들을 중국에 내 주었다고 그는 아쉬워했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중국이 이렇게 빨리 양국을 추월해 나갈 것으로 짐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고바야시 편집장은 지적했다.

중국의 경제개발 역시 섬유산업이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한국과 일본 섬유업계의 무분별한 중국 진출이 머지않아 두 나라 섬유기업의 목을 조여올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했다.

중국 진출을 서둘렀던 일본 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쓴 잔을 마시고 퇴각하는 패잔병 신세로 전락한 경우도 많이 생겨났다. 한국 기업들 역시 초기 중국 시장에 진출한 상당수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공장을 넘겨주거나 폐업한 채 철수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동국무역의 염색공장이 그랬고 청도 지역에서 문을 닫은 수많은 직물공장들이 좋은 예였다. 

인터텍스타일 베이징 전시장 전경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진입한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 기업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팽창 일변도로 달려나가고 있다. 봉제산업을 잠식한 이후 장치산업인 섬유소재 산업으로 눈을 돌려 세계 최대 규모로 키우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화섬 생산량이 세계 1위로 올라섰고 직물 산업 규모를 가름 할 수 있는 직기 대수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중국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먹는 것(식)의 자급자족에 이어 입는 것(의)의 자급자족을 앞당기려 하고 있다. 이제 중국 정부는 입는 것의 자급자족 목표에서 벗어나 점차 수출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봉제(의류)분야를 석권한 중국은 섬유 소재로 눈을 돌려 주변국들의 섬유소재 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팽창정책은 주변국을 의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들의 팽창 일변도 정책에는 대만 기업들까지 한 몫을 거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팽창정책은 섬유소재류의 가격하락과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면서 전세계 산업 기반을 흔들고 있다. 최근 개최된 아시아 10개국 화섬산업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의 이같은 팽창 일변도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고바야시 편집장과 우리는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과 일본 섬유기업들에게 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며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머지않아 섬유 소재 제조업은 중국 기업들이 장악할 것이다. 지금 일본은 중국에 엄청난 직기를 공급하고 있고 한국 섬유기계업체들도 일본에 뒤질세라 중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섬유 제조업의 자존심을 지켜 왔던 화섬 공장들까지 중국으로 이전 또는 신규공장 설립을 확대하고 있다.

듀폰, 도레이 등 다국적 화섬기업과 대형 석유화학사들까지 가세해 중국에 공장을 건립하고 있다. 고합, 효성에 이어 휴비스, 코오롱 등 한국의 대표적인 섬유 소재기업들도 중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패션기업들도 잇따라 대 중국 진출에 나서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가야할 길인 것 같다.

이제 중국의 산업 팽창 정책을 질타하고 우려하고 있을 단계를 넘어섰다. 현지 진출을 통해 중국 내 시장을 파고들어야 하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시대로 접어 들었다. 선진국 기업들이 앞다투어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곳곳에 투자를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그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경에서 개최되는 [인터텍스타일 베이징] 역시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세계 섬유소재업체들을 위해 독일 메쎄프랑크푸르트사가 기획한 행사 중 하나다. [인터텍스타일 베이징]에 앞서 개최된 [인터스토프 홍콩]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은 바이어가 홍콩에서 베이징과 상하이, 다롄 등 중국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 램(Katy Lam) Eve Tam(에버탐) 메쎄프랑크푸르트 홍콩지사의 미쓰 에버탐도 세계 바이어들이 중국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고 그래서 북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박람회가 열리고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에버탐은 조만간 상해에 메쎄프랑크푸르트 지사가 설립된다는 점도 귀띔해 주었다. 앞으로는 홍콩이 아니라 상하이와 베이징 등 중국 주요 도시들이 직접 교역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회 첫 째날 차이나 트레이드센터는 세계 각국의 섬유 신소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바이어들로 가득 찼다. 주로 베이징 인근의 봉제업체와 직물업체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일부 바이어는 먼 곳에서 온 경우도 있었다. 

이 전시회는 북경이 과연 섬유소비도시로 얼마만큼 성장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베이징 인근에 소재한 수많은 봉제업체들에게 제품과 브랜드를 소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었다.

전시회는 오전 10시에 개막돼 오후 5시에 하루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기자단은 취재를 마치고 인도 면방직섬유수출협회(TEXPROCIL)가 주최한 인도-중국 섬유협력의 밤 만찬에 초대되었다.

인도면방직섬유수출협회는 베이징 쉐라톤호텔에서 중국 방직공업국 인사들과 중국 섬유업계 인사들을 초청 인도섬유업계와 교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인도 면방직섬유수출협회는 인도산 면과 양모, 섬유소재 등이 중국으로 많이 수출되고 있으며 앞으로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양국이 섬유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중국 국제복장전시회장 전경 비동맹을 이끌고 있는 인도와 중국이 정치적 관계를 떠나 섬유산업 분야에서도 가깝게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과거 실크로드를 잇는 국가였기 때문에 섬유산업에서 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는 인도가 중국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섬유업계가 인도처럼 리셉션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음날 우리는 인터텍스타일 베이징 전시회를 취재하고 잠깐 시간을 내 중국 국제전시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는 중국 국제복장전시회(CHIC2002)를 취재했다. [CHIC2002]에는 한국에서 [해피아이] 등 20여개의 패션업체들이 한국관을 형성해 참가하고 있었다. 한국관은 한국의류산업협회 주관하에 비교적 잘 꾸며져 있었다.

관람객은 인터텍스타일 베이징과 달리 바이어를 불문하고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돼 있었다. 입장권이나 바이어 등록 없이도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좀 무질서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브랜드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데는 이런 전시회가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는 한국관에서 한국의류산업협회 김갑중 전무를 만나 전시회 참가 소감을 들었다. 김 전무는 "중국 국제복장전시회에 여러번 참가했지만 할 때마다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통관문제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힘이 들더라도 이 같은 전시회에 우리 나라 패션 기업들이 더 많이 참가해 대 중국 시장 개척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텍스타일베이징에 참가한 이탈리아 모직업체 중국국제복장전시회 취재를 마치고 우리는 독일 메쎄프랑크푸르트가 주최하는 바이어와 참가업체들을 위한 저녁 만찬에 초대 되었다. 북경의 유명 만찬장인 조어대(댜오위타이/釣漁臺) 영빈관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는 전시회 참가 기업체 임직원들과 주요 바이어들이 초청돼 저녁식사를 하면서 우의를 다지는 시간이였다.

메쎄프랑크푸르트사는 중국 방직공업국 인사들도 이 행사에 초청해 대 중국 진출을 노리는 전시회 참가 기업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등 섬유 선진국들이 중국 시장 특히 베이징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섬유 기업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팔고 있는 섬유 소재는 우리 나라 제품 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지만 이미 중국인들에게 고급 소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았다. 중국 상류층 역시 우리나라처럼 외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선진국 섬유 소재업체들의 대북경 공략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 할 것 같았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의 값 비싼 섬유패션제품들이 중국 시장을 활보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데서 기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섬유패션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는 선진국 제품을 따돌리고 중국 상류층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결국 중국의 값싼 제품과 모방품에 설 자리를 점 점 더 잃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텐진과 북경에서 보낸 4박 5일간의 일정에서 우리는 중국의 한 부분만을 보았다. 비록 짧은 기간 이였지만 중국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섬유패션기업들의 대중국 진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고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이 기행문이 중국에 진출하는 섬유패션 기업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도움주신 기업 및 관계자:독일 메쎄프랑크프루트사, 메쎄프랑크푸르트 한국지사 진용준 사장, 가이드 김청화씨, 메쎄프랑크푸르트 홍콩지사 케이티램, 에버탐](베이징=조영준 기자  패션저널&텍스타일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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